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쁜 페미니스트 (문단 편집) === '[[근본주의]]' 페미니즘? === > "근본주의 페미니즘이 실제로 있거나 혹은 내가 무언가를 근본주의로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 즉 페미니즘 안에도 옳고 그름이 있고 페미니즘을 잘못 시행하면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개념이다. 근본주의 페미니즘은 곧 분노, 유머 감각 없음, 공격성, 확고부동한 원칙을 나타내며 적합한 페미니스트 여성이 되는 방법, 적어도 적합한 백인 이성애자 페미니스트가 되는 방식을 규정한다. 포르노그래피를 싫어하고 여성의 대상화는 무조건 매도하고 남성들의 시선에 부응하지 않고 남자를 미워하고 섹스를 싫어하고 일에만 열중하며 제모를 하지 않는다." > ----- > - pp.356-357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저자는 "[[페미니즘]]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유일한 길" 같은 논리를 굉장히 경계한다. 사실 국내에서도 이것은 종종 이슈가 되곤 했으며, 심지어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탈코르셋]]을 하지 않고 [[화장]]을 하는 여성은 페미니스트로 불려서는 안 될까? 직업여성이 자신의 진취성과 전문성을 드러내기 위한 '진하고 강한 화장' 을 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실천일까, 아니면 페미니즘에 대한 "배신" 일까? [[엠마 왓슨]]처럼 가슴골이 깊이 파여 있는 상의를 입고 공식 석상에 오르는 것은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자기 자신의 표현의 방식]]일 뿐일까, 아니면 자기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일까? 기혼 여성이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서도 남편과의 [[이혼]]만큼은 하지 않는다면, 이런 페미니스트는 부부 간 [[성 역할]]의 개혁을 자기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일까, 아니면 여성 간의 자매애(sisterhood)를 무시하고 남성을 통해서만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통념에 공모하는 "[[가부장제]]의 부역자" 인 걸까? 페미니스트가 소위 '[[남페미|유니콘남]]' 이라 불리는 남자친구를 사귄다면, 이것은 [[양성평등]]을 위한 남녀 간의 협동의 가능성일까, 아니면 "[[못 잃어|남성 권력의 시혜를 잃지 않으려는]]" 비겁한 전략일까? 아직까지 대개의 중론은 '''이런 질문에 [[답이 없다|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일각에서는 "페미니스트가 어딜...", "당신이 그러고도 페미니스트냐" 같은 불만이 나온다. 이는 마치 수줍음 많은 남성에게 "남자가 되어 가지고 그게 뭐냐", 활발한 여성에게 "여자가 무슨 머스마같이..." 라고 훈계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바로 이 때문에 저자는 4부의 첫 부분에서 [[주디스 버틀러]](J.Butler)의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 개념을 가져온다. '''세상에 [[성 역할]]이 있는 것처럼, 페미니스트들도 페미니즘 실천의 "옳은 방법", "본질적 기준", "올바른 길" 이 있다는 생각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 그 길에서 벗어난다고 여겨지는 순간, 곧바로 [[만물여혐설|지능적 여혐러로 몰거나]], 가부장제에 부역하는 [[명예남성|명예 남성]]이라는 도덕적 비난을 가하며 페미니즘의 적으로 라벨링한다. 저자는 특히 엘리자베스 워첼(E.Wurtzel)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의 언설을 좋아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진짜/가짜 페미니스트를 편가르기하려고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페미니즘 '[[근본주의]]자' 들은, 개인적 특성이나 인간의 복잡한 경험, 상이한 관점을 용납하지 않으며, 매사 싸잡아 말하면서 분류하고 범주화한다. [[근본주의]] 페미니즘의 [[낙인 효과]]는 페미니즘이 그 실천에 있어서 평범한 여성들은 엄두도 못 낼 만한 사상이라고 느껴지게 하며 "특별한 소수나 하는 것" 이라고 여기게 만들어서, 여성들이 "나도 페미니스트입니다" 라고 말하게 하는 것을 저해한다. 짧게 말해, '''개인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고 정체화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소위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온갖 까다로운 품질 검사(?)를 거쳐야 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각되는 순간, 그 사람은 한때 페미니스트였지만 이제는 시대착오적 성차별주의자가 된다. 아니, 여성운동의 진보를 무너뜨리기 위해 양의 탈을 쓰고 숨어들어온 이리 같은 취급을 받는다. 상황이 이럴진대, 과연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감히' 자신을 페미니스트라는 '위대한 일부 여성들의 존명' 으로 참칭할 수 있겠는가? [[양성평등|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갈 자신까지는 차마 없는 이 여성들은, 이제 스스로를 소개할 때 "I'm not a feminist, but..." 으로써 입을 열게 된다. 이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즘은, 일상적 실천의 방식이기는커녕 자신과 하등 관계가 없는 거창한 공적 프로젝트일 뿐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 페미니즘이 여성들에게는 점점 대중적 거리감을 유발시킨다면, 우리 사회에는 또 다른 [[고정관념]]을 만들어낸다. 너도나도 그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집단극화가 일어나면서, 점점 [[극단주의]]적인 양상이 대중의 눈과 귀에 가시화된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두들 잔뜩 화가 나 있고, [[브래지어]]를 불태우며, [[쌩얼|언제나 전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는 [[투블럭]] 내지는 아무리 못해도 [[보브컷]]이어야 하며, 정장을 입어도 치마는 절대로 안 되고,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하며, [[워커홀릭|일에 미쳐서 일밖에는 모르고]], 아기 돌보기를 싫어하며, 아무리 농담을 해도 웃기는커녕 "[[이거 나만 불편해|그거 불.편.하.군.요.]]" 라고 따박따박 쏘아붙이고, 늘 드라마를 보나 영화를 보나 오만상을 찌푸리며, 타인에게는 "[[잠재적 가해자|이제 그만 본인의 특권을 인정하시죠?]]" 라며 다그치는 무례한 태도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교과서적으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가 대중에게 익숙해지면서,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에게까지 엉뚱한 질문이 들어온다. "너는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겨드랑이 털]]을 제모하는 거야?" 결국 극소수의 교과서적인 사례에 해당하지 않는 '''수많은 평범한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 진영 내부에서건 외부에서건 늘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직장에서 여성들이 직장인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를 겪는 사칭범(imposter) 현상에 대해 페미니즘은 늘 지적해 왔는데, 이런 그들이 정작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에까지도 "내가 정말 페미니스트라고 불릴 자격이 있나?" 하는 사칭범의 느낌을 갖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독자들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는지는 몰라도, 저자는 4부 말미에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저자가 밝히는 바에 따르면 저자는 비-페미니스트들의 관점에서조차 "...그러고도 당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 저자는 타인이 챙겨주는 것을 선호하고, 울적한 감정에 깔리기도 하며, 여성비하적인 랩 가사를 들으며 즐거워하고, 분홍색을 좋아하고, 《보그》 잡지를 읽고, 명품 백과 커다란 의상실의 판타지를 갖고 있으며, 다리털 제모를 하며, 자동차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남성들을 매우 좋아하며, 사치스런 결혼식의 판타지가 있고, 잔디 깎기와 벌레 잡는 일은 남자를 시키고 싶고, 어떤 집안일은 남녀구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좋아하지 않는 남성과 섹스하면서 '느끼는 척' 을 할 수 있고, 아이를 갖고 싶고, 아이를 기르기 위해 커리어에 타협을 할 용의가 있고, 딩크(DINK)족이 되는 것이 두렵고, 자녀 육아를 위해 일을 줄일 의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때 저자 역시 자신이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은 다른 이들이 막연히 생각하듯이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으로 그린 듯이 흠잡을 데 없는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려던 저자의 노력은 '''완전하게 실패했다.''' 그런 가면을 쓰고 고생스런 연기를 한 경험 이후로, 저자는 이제 스스로에 대해서 "그저 나를 받아들이고 내 신용 평점을 받아들이려 애쓰는 30대 여성일 뿐"(p.373)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페미니스트가 "전투적이고 정치적이며 인간으로서 완벽하고 남자를 증오하고 유머가 없는 사람들"(p.375) 같은 특이한 부류의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저자는 "I'm not a feminist" 표현을 쓰는 것을 긍정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되, 그저 '되다 만', '조금 부족한', '불완전한'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면 된다는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일부 작가들이나 방송인들, 혹은 [[엠마 왓슨]]이나 [[브리 라슨]] 같은 여배우들, 이런 소위 "big mouth" 의 완벽함에 의해 결정되는 '셀러브리티 페미니즘' 을 비판한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지만, 셀러브리티 페미니즘은 이들의 잘못을 페미니즘의 잘못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세상에 모든 여성들의 행실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단 하나의 페미니즘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페미니즘을 완벽하게 체화한 역할 모델 유명인을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 대신, 자기 자신이 페미니즘을 실천하기 위한 자기만의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은 천편일률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가 다양한 페미니즘들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 하나의 완벽하고 절대적이며 유일하고 본질적인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대문자 페미니즘"'''(Feminism)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며, 사람들이 따를 수 있는 다양하고 상대적이며 일상적이고 유연한 페미니즘을 모두 인정하자는 관점을 '''"페미니즘들"'''(feminisms)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 분야에서 이런 구분법은 상당히 폭넓게 적용되고 있고, 유용하기도 하다. [[사학]]계를 예로 들면, 주류 실증주의 사학계에서는 역사를 단 하나의 관점(지배자의 관점)에서 연대기순으로 나열해서 그 역사적 평가를 확정하는 '[[국사]]' 접근법을 선호하지만, [[구술사연구]] 등을 방법론으로 하는 마이너한 부류에서는 일반 민중이 겪는 다양한 경험들과 기억들을 역사'들'로서 복수의 형태로 다루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관점에서는 '대문자 역사관' 이란 그저 다수의 기억들 중 그 하나의 기억이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기억투쟁에서 승리했을 뿐이라고 본다.] 이런 대문자 페미니즘은 한편으로는 [[흑인]],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등까지도 페미니즘의 진정한 이상에 맞지 않는다고 보아서 간과하거나 배제하거나 심하게는 [[TERF|배척해 왔고]], 그 결과 수많은 잠재적 아군들이 페미니즘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결국, 페미니즘의 근본주의화는 페미니즘의 실패 사례가 되고 말았다는 것.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나는 뭘 해도 페미니스트로서 괜찮다" 라는 본서의 방법론적 아나키즘에 가까운 제안은, 자칫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나는 뭘 해도 시민으로서 괜찮다" 고까지 확대될 위험도 있다. [[워마드]] 등처럼 페미니스트로서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도 정체화 수준에서는 자신이 여전히 페미니스트라고 믿을 수는 있지만, 사람들의 비난으로부터의 면책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교양 있는 시민으로서 개인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책임이 있는데, 본서는 그것까지 피할 논리를 제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본서의 메시지는 페미니즘의 '''근본주의적 규율을 강요하는 세태'''를 경계하는 것일 뿐이지, '''시민성이 결여된 악행에 대해서까지 [[자기합리화]]를 해 주지는 않는다.''' 즉, 일단 반사회적인 행동을 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나는 부족한 페미니스트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행동일지라도 괜찮아" 라고 생각함으로써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인간말종|(도덕적으로) 나쁜 시민]]" 이라는 질타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